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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생활의 지혜'는 살다 보면 저절로 얻어지리라 기대했었다. 하 지만 세상에 저절로 알게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해마 다 실감한다. '이런것 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싶은 분야(가령 잘 쉬는 법 혹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비결 같은 것)도 전공 과 제를 할 때만큼이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겨우 내게 맞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나를 탐구하 는 마음으로 산다. 시험도 과제도 성적도 없지만 보다 만족스 러운 일상을 위해 꼭 필요한 공부랄까.
돈 쓰는 법도 배워야 하는 걸까?
그중 돈에 대한 생각은 유독 오랫동안 미뤄왔다. 특별한 의도 없이 적극적으로 벌지도 쓰지도 않았다. 세 번만 입어도 보풀 로 뒤덮이는 스웨터나 신으면 발에 고무 냄새가 배는 구두같 이 시시한 물건을 한 두개 사고 나면 통장이 바닥났고, "돈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체념했다.
'학생이 다 그렇지 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씩 해서 기 어코 유럽 여행을 떠나거나 밥을 굶어서라도 아이패드를 사고 마는 애들. 자기가 뭘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그것을 쟁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성적 맞춰 대학에 온 애처럼 수동적으 로 떠다녔다.
불만족스러운 물건들과 함께하는 불만족스러운 일
상
취직을 해서 매달 월급을 받게 됐지만 내 태도는 크게 달라지 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띄어도 '과연 이 돈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을까? 내 수준에 맞는 물건일까' 우물쭈물하 다가 흘려 보내곤 했다. 그렇게 아낀 돈을 천원씩 만원씩 아무 렇게나 써서 월말이면 항상 생활비가 쪼들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화장할 때 쓸 거울이 필요해 가게에 간 다. 나는 선크림을 매일 바르니까 적어도 하루에 두 번 이상은 볼 물건이다. 후보 A는 불투명 플라스틱 소재로 뒷면에 취향 이 아닌 레터링 스티커가 붙어있다. 받침대엔 쇠붙이가 불안 정하게 튀어나와 있어서 금방 헐거워질 것처럼 보인다. 여러 모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많지만 가격은 매우 저렴하다. 2
천원.
후보 B는 원목 소재로 마감이 매끄럽게 되어 있어서 만질 때 마다 기분이 좋다. 크기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튼튼해 보인다.
하지만 거울치곤 좀 비싸다. 3만원.
'거울이 꼭 예쁠 필요가 있을까? 잘 보이기만 하면 되지.' 나는 후보 A를 선택한다. 그리고 가게를 나와 피자와 맥주를 사먹 는다. 3만원.
내 방은 이렇게 사 모은 불만족스러운 물건들로 가득했다. 곰 팡이가 핀 형광색 욕실 슬리퍼, 등받이 한쪽이 부러진 의자, 햄 버거 먹고 사은품으로 받은 컵. 너저분한 것들로 채워진 방이 싫어서 툭하면 떠났다.
그 시절 내 SNS엔 잠시 빌려 쓴 공간, 그러니까 카페나 식당, 숙소를 찍은 사진만 잔뜩이었는데, 피드에 있는 예쁜 물건들을 보면 짠 음식을 먹은 후처럼 목이 말랐다. 그 불만족의 원인이 돈 쓰는 법을 몰라서였다는 건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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