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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가 원래 그런 이유

또리비니

회의실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팀장이 말했다.

“의견 좀 내봐. 맨날 나만 얘기하는 거 같아”

한 팀원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이번엔 인플루언서를 활용해서 자연스럽게 홍보하면 어때요. 예산도 적게 들고요.”

팀원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거 위험해. 인플루언서들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거잖아. 우리 회사 이미지에 상처라도 나면 어떻게 할 건데?”

회의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팀장은 늘 그랬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시될 때마다 '안정성'을 이유로 반대하곤 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옆자리 동료를 바라봤다.

“뭔가 말해야 하지 않을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동료는 어깨를 으쓱하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저 사람 원래 그래.”

그 순간, 나도 할 말을 잃었다. ‘아,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원래 그래'라는 이 말은 이상하리만큼 설득력 있었다. 상황을 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었다.

 

'원래 그래'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늘 늦는 친구에게, “아, 걔 원래 그래”라고 말하며 더 이상 불평하지 않는다.

작은 일에도 쉽게 화내는 가족에게, “원래 저래”라며 더 이상 다가가지 않는다.

때로는 직장에서, 때로는 관계 속에서, 이 말은 우리의 기대를 접게 만들고, 가능성을 제한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원래'라는 말이 때로는 '익숙함'과 '안도감'을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아,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불편함을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을 더 이해하려는 수고로움이나, 관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원래’라는 말은 그래서 일종의 방패와도 같다. 하지만 그 방패를 드는 순간, 우리가 놓치는 건 무엇일까?

“그 사람은 원래 그래”라고 넘겨버리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버린 건 아닐까?

 

 

팀장의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건 퇴사 직전, 팀의 마지막 회식 자리에서였다.

이미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으니, 그날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심정이었다. 술잔이 몇 차례 돌고 분위기가 조금 풀렸을 무렵, 나는 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장님, 있잖아요. 가끔 우리 의견 잘 안 들어주시잖아요. 저희가 낸 아이디어도 나쁜 게 아닌데 왜 그러셨는지 궁금했어요.”

그는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금세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 그랬구나. 미안해. 내가 사실 좀 예민한 면이 있거든. 전에 내가 팀원 의견을 받아들였다가 큰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어. 그 뒤로는 내가 더 책임질 수 있는 것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지. 너희 의견이 틀렸다기보다는… 혹시라도 리스크 있는 판단을 하게 될까봐 더 신중하게 된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경험, 그리고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방어적이 된 것이었다. 우리가 그를 '원래 그런 사람'으로 단정 짓는 순간부터 진짜 이유와 그 너머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원래 그런거야”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을 처음 보는 눈으로 바라보며, 모든 것을 새롭게 경험한다. 바다가 왜 파란지, 바람이 왜 부는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익숙함을 경험한다. 질문하는 대신, 단정 짓게 된다.

우리는 이 말을 만날 때마다 선택할 수 있다. 단순히 체념할 것인가, 아니면 그 너머를 탐구할 것인가.

그리고 그 생각을 통해 우리는 익숙함 속에서 숨어 있던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보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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