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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멸망, 사망자는 0명

아는게없음

출처: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napolitan&no=43195&page=31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습니다.”

 

발언의 내용이 가지는 무게와 달리 그 발언을 꺼낸 사내의 표정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그게!”

 

“바쁜 사람들 모아놓고 장난합니까 지금!”

 

자리에 참가한, 각국 어딜 가든 귀빈 대우를 받을 이들이 반발했다. 하지만 연단에 선 이는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습니다.”

 

자리에 모인 이들이 저들끼리 바라보며 당혹스러운 시선을 교환했다. 사내가 내뱉은 말은 망상과 공상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무언가였다. 당연히 높으신 분들이라고 일컬어질 그들이 듣고 있을만한 발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국제기구의 호출을 통해 이루어진 정상회담에 준하는 자리였다. 헛소리가 나올 자리가 아니었다.

 

“근거가 있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이미 검증되었고 학회와 UN에서도 승인된 내용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세상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질 것이다?”

 

“아니요. 이미 퍼졌다는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

 

“모릅니다. 솔직히 이제와서 딱히 중요하지도 않고요.”

 

“어디서 퍼졌는지가 어째서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까? 바이러스가 퍼진 지역을 격리 구역으로 지정한 뒤 방역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닙니까?”

 

발표자는 레이저 포인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ppt의 다음 페이지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세계 지도. 그들이 아는 것과 다른 점이라면 전체가 적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저게 뭡니까?”

 

“바이러스가 퍼진 지역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좀비 바이러스는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요!”

 

성질 급한 누군가가 다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소 위압적인 행태에 눈살을 찌푸린 누군가도 있었지만 그들도 동조하는 기색이었다.

 

“전 세계에 그런 끔찍한 바이러스가 퍼지고도 당신이 여기 나와서 발표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네. 그에 관해서는 설명 드리겠습니다.”

 

사내는 좌중을 한 번 훑어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납득이 어려울 거라는 것,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세상에 퍼진 좀비 바이러스는 여러분이 아는 좀비와는 다소 다를 겁니다.”

 

“다르다니, 어떻게 말입니까?”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 철학적 좀비라는 용어를 아시는 분 계십니까?”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긍정의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딱히 그것을 기대한 것이 아닌 듯 사내도 자연스레 계속 말을 이었다.

 

“철학적 좀비란, 쉽게 말해 보통의 사람과 외형적, 기능적, 구조적으로 완전히 동등하나 심리 상태가 없는 존재를 뜻합니다. 예컨대 사람처럼 울고 웃고 다치고 장난치는 등의 행위를 하지만 그 행위는 조건 반사적인 행위일 뿐 어떠한 심리를 반영한 행위가 아니라는 말이죠.”

 

몇몇은 이해를 못한 듯한 표정이었고 몇몇은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사내는 아랑곳않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아마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도 ai 챗봇을 쓰신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그들이 답변을 할 때 딱딱하게 자기 할 말만 하던가요? 아니면 간혹 웃음소리를 흉내내거나 미안하다, 고맙다 등의 말을 하던가요? 하지만 그렇다고 ai가 감정과 마음을 가지고 있어 그렇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없을 겁니다.”

 

“결론이 뭡니까 그래서?”

 

“네 뭐, 말하자면 철학적 좀비란 인간을 분자 하나 단위까지 완전히 동일하게 동작하게 만든 일종의 정교한 기계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는 겁니다. 그것에 마음은 존재하지 않죠. 설령 누군가 그것에게 상처 입히는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는 이유는 보통의 인간과 같은 반응을 하기 위해서지 슬퍼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만! 당신이 말하는 그 철학적 좀비인지 뭐인지에 대해서는 이해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냥 사람이랑 똑같이 굴고 사람과 구분 못하는 인형 같은 거 아닙니까? 그거 하나를 뭘 그리 오래 설명합니까?”

 

“지금 지구에 퍼진 바이러스가 그겁니다. 그러니까 명칭을 붙이자면 철학적 좀비 바이러스라고 해야겠군요.”

 

“······.”

 

“쉽게 말해, 여기 이 자리에 모인 분들 중 누군가의 가족, 친척, 지인 등이 이미 좀비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아니면 여기 계신 누군가일 수도 있겠죠.”

 

“······믿기 힘든 이야기군요.”

 

“글쎄요. 정말 그런가요?”

 

“아니, 설령 그런 병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도 없는 놈들이 왜 사람을 흉내낸답니까?”

 

“왜가 아니라 병의 증상이 그렇습니다. 인간에게 들킬 경우 박멸당할까봐 바이러스 스스로 생성한 기전이 아닐까 싶군요.”

 

“감염 경로는 어떻게 됩니까?”

 

“보편적 상식의 좀비와는 다르니 감염 경로도 아마 경구 감염이나 접촉 감염처럼 단순하지는 않겠지요.”

 

“장난합니까 지금?”

 

“죄송하지만 애초에 이 병 자체를 연구할 만큼의 여유가 크게 없었어서요.”

 

“그렇다면 치료 방법이나 예방 방법은 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대체 아는 게 뭡니까? 우리를 왜 부른 겁니까 그러면?”

 

“잠깐, 잠깐만요. 정말 그것에 마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단 사람들을 대상으로 뇌파를 촬영해보면 되는 거 아닙니까? 뇌파를 촬영하고 확진자들을 일단 격리 조치하면······.”

 

“지구상의 130억 명을 전부 어떻게 촬영합니까?! 말마따나 감염 경로도 모른다면 격리를 해봐야······.”

 

한동안 탁상공론이 오고갔다. 사내는 팔짱을 끼며 무심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일단 진정들 합시다. 아마 그 좀비라는 것이 정말 있다는 가정하에 분류할 방법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저분이 발견할 수 있었을 테죠.”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사내에게로 향했다. 다시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 병의 증상은 알고 있습니다.”

 

“병의 증상이라니요? 그건 아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니다.”

 

“감염자의 생생한 증언입니다. 처음에 인사드릴 때 제 소개를 했었죠. 연구원 이원일이라고. 하지만 저 자신은 저를 이원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하지요. 애초에 마음이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사고란 연산적 사고뿐이니까요.”

 

몇몇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몇몇은 이원일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품에서 총을 꺼내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 미친 새끼가! 사람들 감염시키려고 작정했냐!”

 

“여기 사람들이 그 병에 감염되면 세상은 끝장난다는 걸 모릅니까? 미쳤다고 당신이 연단에 섰어요?”

 

“일단 진정들 하십시오. 제 말을 다 듣고 나면 그렇게 화낼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이원일이 양팔을 들며 말했다.

 

“저는 저 자신을 이원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원일이라면 해야 할 행동은 취합니다. 말했듯 철학적 좀비란 인간의 행동을 그대로 재현하는 존재니까요. 그리고 연구원 이원일은 이타적인 인물입니다. 설혹 자신이 좀비가 되더라도 사고능력에 문제가 없다면 그 사태를 해결하려 할 인물이지요. 그러므로 나는 이원일의 병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을 연구하게 된 겁니다.”

 

“연구라니, 대체 뭘 연구한 겁니까?”

 

“뭐, 연구라고 해도 별 건 없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촬영 결과 뇌파까지 완전히 동일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분류할 방법이 없는 셈이지요.”

 

“그게 말이 됩니까? 뇌파가 존재하는데 감정과 마음이 없다니?”

 

“1형 당뇨 같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뇌파는 있으나 뇌파 수용체는 없는거죠. 물론 실제로는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요.”

 

“자꾸 선문답 좀 하지 말고 말 좀 제대로 하시오. 뭐가, 어떻게 다르단 거요?”

 

“말하자면 이 바이러스는 인간을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든다는 겁니다. A가 이 병에 걸렸을 때 마음이 사라진 A가 된다기보단, A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애초부터 마음이란 것이 없었던, 기계나 다름없는 새로운 존재 B가 A의 기억과 태도, 습관을 이어받은 채 A가 되어버린다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뭐, 이것도 완벽한 비유는 아니지만요.”

 

“뭐가 다른 겁니까?”

 

“쉽게 말하면 이겁니다. 설령 제가 마음이란 걸 되찾는다고 한들 저는 저를 이원일로 인식하지 않을 겁니다. 굳이 따지면 이원일의 복제 정도로 인식하겠죠. 하지만 지금 말하고 있는 제가 이원일 본인이라는 명제 자체는 맞다는 겁니다.”

 

“이해못할 말은 집어치웁시다. 그래서 마음을 되찾는 방법이 있다는 겁니까?”

 

“아니요? 그냥 예를 든 것 뿐입니다. 자꾸 철학적 좀비가 구조적으로 인간과 같다고 해서 헷갈리시는 모양인데 좀비를 그냥 안에 철사와 솜이 든 인형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좀비가 되면? 그걸로 끝입니다. 돌이킬 방법은 없어요. 병원체의 제거만을 병의 치료라고 하지는 않죠. 저는 이원일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마음에서 비롯하는 철학적, 혹은 형이상학적인 무언가로 정의되는 거라면 저는 이원일이 아니고, 아니게 됐고, 영원히 아닐 겁니다.”

 

“이익! 치료도, 예방도, 발견도 못한다는 말을 왜 이렇게 빙빙 돌려 말하는 겁니까! 그래서 우리더러 뭘 어쩌라는 겁니까아!”

 

누군가 발작을 하듯 외쳤다. 역시나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번에도 모두가 그에게 동조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발광에 이원일이 처음으로 긍정적인 발언을 했다.

 

“발견은 가능합니다.”

 

“······정말입니까? 아니, 어떻게?”

 

“말했듯, 철학적 좀비는 마음의 유무 외의 모든 것이 인간과 같지만 본질은 질병. 다른 것이 또 하나 있지요.”

 

“그게 뭡니까?”

 

“병원체의 유무.”

 

절대의 불치병이지만 질병은 질병. 질병에는 병원체가 필요했다.

 

“나는 그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이원일은 최악의 순간이 닥쳐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인간이었으니까요.”

 

이원일이 리모컨 버튼을 연타했다. 쓸모없는 페이지를 훅훅 넘겼다.

 

“증상 자체가 사람을 행동하는 기계로 만드는 병이라서 그런지 질병 인자의 특성도 상당히 특이하더군요.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인데 어딘가 인체공학적 컴퓨터 바이러스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이건 뭐 설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테니 넘어가겠습니다. 좌우간 덕분에 이것을 관측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지요.”

 

ppt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다.

 

“저는 그 프로그램을 나사의 협조를 받아 인공위성으로 송신했습니다. 그리고 지구 전체를 향해 프로그램으로 스캔했지요. 그것으로 인류의 얼마나, 우리 일상 중에서는 누가 감염이 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원일이 버튼을 누르자 페이지 중간에 수치가 나타났다.

 

[Population: 13,054,062,891]

[Infectee: 13,054,062,891]

[Rate: 100%]

 

“······이, 이게 무슨!”

 

누군가는 경악했고 누군가는 분노했다. 그것을 보며 이원일은 웃었다.

 

“하하하!”

 

“우, 웃어? 웃깁니까 이게 지금!”

 

“웃겨서 웃는 게 아닙니다. 이원일이었으면 이 상황에 웃었을 테니 웃는거죠. 이성적인 인간이었지만 동시에 약간 맛이 간 인간이었거든요. 결국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연기를 하고 있는 우스운 상황이니까요. 아니면, ‘나는 지금 분명 감정을 느끼고 있어!’라고 주장하실 분 계십니까?”

 

그리고는 좌중을 훑으며 말한다.

 

“바티칸의 교황께선 지금도 이해조차 못하는 신의 미사를 주관하시겠지요. 제3국 어딘가의 독재자는 자신을 증오할 수도, 자신이 증오할 수도 없는 적을 독살하고 있을 테고요. 벤치에서 숨죽여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도, 풍선을 들고 유원지에서 해맑게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도, 인생의 벽에 부딪혀 홀로 구슬피 눈물을 흘리는 사내도 모두 연기라고는 생각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갈 겁니다.”

 

삑-

 

이원일이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검게 변하며 강당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설혹 이 사실을 대중에 공개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절망하지 않을 겁니다. 절망이 뭔지도 모르니까요. 누군가는 말도 안된다고 폭동을 일으킬 테지만 그건 분노해서가 아니겠지요. 어떤 고등학생 남자아이는 아침식사를 하며 티비를 킬 거고 당신들의 발표를 보고는 ‘저게 말이 돼?’라고 혼잣말할 겁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쓸데없는 데 관심 두지 말고 빨리 학교나 가!’라고 말하겠지요. 거기에도 역시 어떠한 의문이나 애정은 담겨있지 않을 겁니다. 인간의 탈을 쓴 기계의 세상이 도래했군요.”

 

이원일이 어두워진 강당을 나서며 말했다.

 

“공표하세요. 인류는 멸망했다고. 사망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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