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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가장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린 유괴사건 1부

익명

출처 : 나무위키&침대감

오늘 이야기는 박초롱초롱빛나리의 유괴사건에 전말과 범인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사건으로 지금까지도 논란이 일어났던 사건을 재구성해보려고 합니다 

 

 

 

 

 

1997년 8월 30일 범인 전현주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의 뉴코아백화점(현 뉴코아아울렛 강남점) 버거킹에서 콜라 한 잔을 구입해 마시며 서성이던 도중 영어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귀가하던 피해자 박초롱초롱빛나리를 목격하고 재밌는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유인, 소품 제작실 겸 창고로 사용하던 사당동의 지하 창고로 유괴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일 저녁 총 3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부모에게 공중전화로 2천만 원의 몸값을 요구하였습니다. 전현주는 첫 번째 협박 전화를 한 뒤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사탕이라고 속여서 먹이고 잠을재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나 울면서 집에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피해자를 교살했습니다. 대부분의 유괴, 납치 사건에서 범행 당일에 피해자가 살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기고 시신을 등산용 배낭에 담아 창고의 출입구 쪽 계단 밑에 방치했습니다.

 

유괴 다음 날 전현주는 명동의 커피숍에서 피해자의 부모에게 "전화상에서 말한 액수의 금액을 준비하고 오라"는 내용의 전화를 하던 중, 발신지 추적으로 들이닥친 경찰의 검문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경찰은 전화가 걸려온 지 9분 만에 신속하게 전현주를 포위했지만, 커피숍에 있던 13명의 사람 여자 12명, 남자 1명을 검문하다 임신 8개월 상태인 임신부가 설마 범인이겠느냐며 현실적이지 않다고 가볍게 넘어가다가 그만 놓쳐버렸습니다. 심지어 엉터리 몽타주까지 만들어내 전국에 뿌려댄 탓에 10만 장의 종이가 휴지조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검문을 하는 경찰의 입장에서도 아이를 품고 있는 임신부가 어린이 납치 같은 중대한 아동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였습니다. 게다가 전현주는 궁지에 몰리게 되자 반성은커녕 "아기가 배를 차서 몸이 좋지 않다."며 히스테리컬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어 동정이나 사려고 했고, 그녀의 후배들까지 형사들에게 "임신부에게 이래도 되느냐?"고 윽박지르며 전현주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비공개 수사 중이어서 자세한 설명을 할 수도 없던 경찰의 입장에서는 무리해서 임신부를 수색하기보다는 그냥 보내주자는 판단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혐의점을 증명할 증거도 딱히 없는 상황에서 일반인도 아니고 만삭의 임산부를 체포하거나 했다가는 인권침해 논란으로 비화될 수 있기도 했습니다.

 

검거 당시의 전현주는 임신부였고, 2월에 결혼식을 올린 상태였습니다. 내무부 산하기관에 근무하던 고위공무원 아버지를 둔 전현주는 유복하게 자랐으며, 의사나 작가를 지망하고 있었으나, 본인의 의지와 달리 한신대학교 무역학과를 거쳐 응급구조학으로 전공을 바꾼 후 미국 유학에 올랐습니다. 사건 2년 전인 26세 당시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서 총학생회 간부를 맡기도 했습니다. 커피숍에서 검문에 걸린 상태에서 전현주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서울예대 후배들이 경찰에게 "임산부를 거칠게 대하지 말라!"며 항의하는 통에 경찰이 그냥 풀어준 것도 바로 이 때문인데, 물론 이들도 선배가 그런 인간 말종일 리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런 것이었지만, 전현주가 충격적이게도 이런 추악한 범죄자로 밝혀지자 서울예대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비난이 얼마나 심했는지, 학교 이미지까지 추락해서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는 엄한 서울예대 재학생들이 학교도 못 다니고 휴학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전현주는 사치와 낭비가 심한 터라 결혼 후 3천만 원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유괴를 계획했음이 밝혀졌습니다.

 

피해자의 어머니 한영희 여사는 범인의 검거 소식에 딸을 찾을 수 있으리라 굳게 믿으며 경찰서로 달려가 취재진들 앞에서 감사 기도까지 하였지만, 머지 않아 딸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충격에 빠지고, 사당동 어디냐고 외치며 넋을 잃은 그 모습이 지상파로 전국에 방영되었습니다. 당시 피해자는 서울원촌초등학교 2학년 5반에 재학 중이었는데, 사망이 알려지자 서울원촌초등학교 학생들은 분노와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전현주의 자백에 따라 창고를 수색한 경찰은 등산용 가방에서 심하게 부패한 피해자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유괴 소식에 PC통신을 중심으로 박초롱초롱빛나리 찾기 운동이 벌어졌고, 지상파 뉴스에서도 범인의 육성을 들려주며 캠페인에 동참했습니다.

 

단독 범죄로 결론났으나, 남편은 물론 피해자의 유가족도 전현주의 체포 직후부터 전현주의 단독 범행임을 믿지 않았으며 의문스러워하였습니다. 전현주가 체포되던 당시 전현주의 남편은 아내가 그런 인간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고 망연자실하여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이후 9월 17일 사건 현장인 사당동의 지하 창고에서 전현주가 현장검증을 하며 범행 당시의 상황을 재연할 때, "현주야, 사실대로 말해! 너 아니잖아, 임마! 시키는 대로 했잖아!"라고 울부짖는 절규가 그대로 뉴스 전파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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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정말 소중한것입니다 이세상에는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런 죄없는 아이들을 유괴해서 살인까지 이 모든일은 유괴서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범죄자들은 아이들을 납치가 아무일도 아니라고생각하지만 그 납치가

살인까지 이어질수도있습니다 2부에서는 전현주의 생애와 그에따른처벌은

어떻게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끝까지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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