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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겨우 제 자리 섰는데…거제시 “노동자상 자진 철거하라”

뭘인마

시, 추진위에 원상복구 사전 통지
2차례 불응 시 행정대집행 검토
추진위 “훼손 시 강한 저항 직면”
소녀상과 다른 설치 기준 논란도

속보=경남 거제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부산일보 7월 1일 자 11면 보도)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가열될 조짐이다. 앞선 두 차례 불허 결정에도 민간 추진위원회가 시유지 내 설치를 강행하자 거제시가 자진 철거를 요구하며 행정 조치에 나섰다. 필요시 형사 고발까지 진행할 예정이라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여기에 10년 전 소년상 건립 때와 다른 거제시 잣대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8일 거제시와 일제강제징용노동자상 거제건립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시는 지난 5일 추진위에 노동자상 관련 ‘사전 통지서’를 보냈다. 원상복구 명령에 앞서 자진 철거하거나 의견을 제출해 달라는 것이다.

추진위는 지난달 28일 거제문화예술회관 내 평화의소녀상 옆에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 노동자 넋을 기리는 동상과 표지석을 설치했다. 작년 5월 노동계를 중심으로 11개 시민사회단체와 5개 정당이 손잡고 추진위를 꾸린 지 1년여 만이다. 추진위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중요한 상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반면 시는 시유지를 무단으로 점령, 훼손한 만큼 ‘엄연한 불법 조형물’이라고 못 박았다. 공공조형물은 ‘거제시 공공조형물의 건립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에 따라야 한다. 추진위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소녀상 옆에 노동자상을 세우겠다며 시에 허가를 요청했다. 하지만 시 공공조형물건립심의위원회는 두 차례 모두 부결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추진위가 제안한 부지도 노동자상 건립지로 타당하지 않고, 주민 반대 여론도 적지 않다는 이유였다.

추진위는 “친일 반민족 결정”이라고 반발하며 노동자상이 실린 화물차를 시 청사 주차장 한쪽에 세워두고 한 달 넘게 규탄 집회를 이어왔다. 그럼에도 시가 뒷짐만 지자, 장승포항에서 ‘부·울·경 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설치를 강행했다.

행정절차에 착수한 시는 2차 계고장까지 불응하며 무단점용에 따른 변상금을 부과하고 행정대집행에도 나설 계획이다. 형사 고발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상 허가 없이 행정재산을 사용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에 대해 추진위는 시와 전면전도 불사한다는 각오다. 추진위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노동자상을 훼손할 경우 강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동자상 논란을 두고 거제시 조형물 설치 기준이 10년 전 소녀상 건립 때와 비교할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녀상은 2014년 1월 거제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일본군위안부피해자추모상 건립추진위원회’ 주도로 지금 위치에 자리 잡았다.

과거 일본군에 의해 인권 침해를 당한 아픈 역사를 기리고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자는 취지에 많은 이들이 힘을 보탰다. 당시 경남 지역 최고령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였던 김복득 할머니를 비롯해 지역 학생들과 대우조선해양노조 등 각계각층이 모금에 동참했다. 거제시도 시비 1000만 원을 지원하고 건립지를 무상 제공했다.

추진위는 시가 ‘반대를 위반 반대’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추진위는 “10년 전에는 맞았던 기준이 지금은 틀렸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자기 결정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시는 제도나 여건이 바뀌어 단순 비교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공조형물 건립 조례가 2021년 시행됐고, 주민 여론도 딴판이라는 것이다. 시는 “장소나 취지와 별개로 주민 반대가 주된 부결 이유”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은 2017년 전국적으로 시작돼 현재 8개 시군에 총 9기가 건립됐다. 경남에는 창원시 성산구 용호동 노동자상이 유일하다.

김민진 기자(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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