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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이라면 대부분 아는 전간디, 서지음 작사가 인터뷰

또리비니

 

 

2016년의 작사가│② 전간디 “가사를 쓰는 건 내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처럼 부끄럽다”2016.05.25

 

하루 종일 사람을 따라다니는 그림자(f(x) ‘미행’), 천둥과 번개(EXO ‘Thunder’). 이번에는 태양을 짝사랑하는 지구와 그런 지구를 짝사랑하는 달의 이야기다. 러블리즈의 새로운 3부작을 알리는 ‘Destiny’는 아이돌 가사에서 신선한 비유를 종종 선보였던 전간디 작사가의 작품이며, 가사는 태양과 지구와 달의 관계에 관한 참고서로 삼아도 될 정도로 구체적이다. 이렇게 자꾸만 뜯어보고 싶게 만드는 가사를 쓰면서도, 그는 결과물을 내보이는 게 매번 너무나 부끄럽다고 말했다.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이외의 기획사와 작업한 것은 처음 아닌가.
전간디
: ‘전간디’라는 이름으로는 처음이다. 우선 작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한 명이 SM A&R팀에 들어가면서 나한테 작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만나면 우리끼리 표현으로 끝없이 상상을 펼치는 ‘우주에서의 대화’를 나누던 친구인데… 그렇게 이야기 나눴던 공상 같은 것들을 가사로 옮겨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더라. 처음에는 계속 거절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은 너무 좋아했지만, 직접 쓰는 건 전문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했거든. 아무래도 나는 실력이 많이 부족하니까 부끄러운 작업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승낙하게 된 걸까. (웃음)
전간디
: 일단 그 친구가 샤이니의 ‘셜록’을 만들어나가는 걸 지켜보면서 저 친구라면 내 부끄러운 글을 잘 다듬어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마침 나도 다른 지인의 부탁으로 잡지에 칼럼 쓰는 작업을 도와주면서 글쓰기를 익혀가던 과정이라, 눈 딱 감고 가사를 한번 써본 거다. 그게 샤이니의 ‘Punch Drunk Love’라는 곡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SM 이외의 회사와 일부러 작업을 안 했던 건 아니고, 내가 이 업계에서 아는 사람이 SM A&R팀이었던 그 친구밖에 없었던 거지. (웃음) 그러다 이 친구가 울림엔터테인먼트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이쪽 일을 시작하게 됐다.

‘Destiny’는 러블리즈의 ‘새로운 3부작’ 중 첫 번째 곡이지 않나. 지금까지 러블리즈가 보여준 캐릭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약간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게 숙제였을 텐데.
전간디
: 러블리즈는 데뷔 때부터 늘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기존의 확실하게 정립된 콘셉트나 방향성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에 대해 경계하면서 조심조심 작업을 진행했다. ‘Destiny’가 러블리즈 ‘새로운 3부작’의 시작이라는 사실은 곡이 공개된 후에 알게 됐고, 데모를 들어봤을 땐 이전 음악에 비해 조금 더 슬프고 성숙해졌다는 느낌이 강하더라. 기존 곡들은 짝사랑의 ‘설렘’ 같았다면, 이번 곡은 설렘이 아니라 안타까움이 들어갔달까. 하지만 그걸 ‘너 때문에 너무 아파, 날 바라봐줘’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러블리즈가 지금껏 쌓아온 감정선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가사 역시 감정 표현보다는 상황의 설계라는 면에 더 집중했고,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픈 대상을 찾다 보니 ‘태양을 짝사랑하는 지구를 짝사랑하는 달’을 떠올린 거다.

“잔잔한 그대 그 마음에 파도가 치길”·“기울어진 그대의 마음엔 계절이 불러온 온도차가 심한데”·“한 번 난 그녀를 막고 서서 빛의 반질 네게 주고 싶은데” 등 태양과 지구·달의 구체적인 현상까지 가사로 녹여낸 게 놀라웠다.

전간디: 작업하면서 너무 과학적이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태양-지구-달의 관계를 모르고 그 자리에 사람을 대입했을 때도 그 자체로 말이 되는 가사가 될 수 있게끔 많이 다듬었다. 해석을 모르고 들어도 곡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달돼야 하니까. 사실 중등 교육 과정 이상의 내용은 가사에서 다루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서 너무 어렵거나 암호처럼 의미를 숨기는 작업은 피하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틀리진 않았는지 늘 검증하고 있기도 하고.

예전에 작업했던 EXO의 ‘Thunder’도 번개와 천둥의 특징으로 풀어낸 가사였는데, 원래 지구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나.
전간디
: 그렇지는 않다. 중·고등학교 성적표라도 보여주고 싶다. (웃음) 항상 내 가사에서는 사람이 우선이다. 달이나 그림자·천둥이라는 비유의 옷을 벗겼을 때 그 자리에는 벌거벗은 감정의 사람이 서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옷을 입혀주는 것이 내가 쓰는 가사의 역할이고. 패션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어휴, 내가 저런 걸 어떻게 입고 다녔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잖아. 하지만 클래식한 슈트나 드레스는 언제나 멋있어 보이고…. 노래 속 감정에 그런 클래식한 옷들을 입히고 싶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혹은 전 세계 누가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표현?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유, 그중에서도 자연현상 쪽의 비유가 많아졌다.

비유의 소재는 주로 어디서 골라내는 건가.
전간디
: 정말 그때그때 다르다. 예를 들어 f(x)의 ‘미행’은 노래를 계속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난 마니 마니또”라고 흥얼거리고 있더라. 거기서 출발해 ‘마니또’를 콘셉트로 작업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림자라는 소재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내 데뷔곡이기도 했던 샤이니의 ‘Punch Drunk Love’는 길을 걸으면서 데모곡을 듣는데, 리듬을 타는 내 발걸음이 권투 하는 사람의 스텝 같아서 쓰게 됐다. 정말 내 관찰력과 상상력은 전혀 뛰어나지 않은 편이다. 일기장에 끼적거릴 만한 내용이 가사가 되기 때문에 작업할 때는 언제나 엄청 부끄럽다. 내 일기장을 누가 훔쳐볼 때 같은….


딱히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 작업 과정이 버겁지는 않나.
전간디
: 작사가로서 약점이 너무 많다. (웃음) 작업을 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밖에 못 쓰지?’라는 생각을 늘 한다. 그래서 곡 의뢰가 들어오면 절반 정도는 쓰지 못하고 끝날 때가 많다. 부끄러워서 차마 회사 쪽에 드리질 못하는 거다. 이런 가사가 혹시라도 채택이 되면 그 팀에 몹쓸 짓을 하게 되는 것 같으니까. 마감도 굉장히 오래 걸리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f(x)의 ‘첫 사랑니’는 가장 빨리 완성된 동시에 가장 오래 걸리기도 한 결과물이었는데, 가사 자체는 하루 만에 썼지만 당시 회사에서 그 가사를 안 좋아하셨다고 하더라. 2~3개 정도의 가사를 더 썼다가 다 채택이 안 되고, 3개월 뒤 처음 썼던 가사로 진행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수만 선생님께서 뒤늦게 그 가사를 보고 좋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굉장한 영광이었다.

작사가 본업도 아니라고 알고 있다.
전간디
: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면서 작사 의뢰가 오면 쓰고 있는데, 솔직히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편은 아니다. 아직까지 본업과 병행하기에 힘든 수준은 아닌 거지. 회사에서도 내가 작사를 한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아는 사람은 앞서 말한 A&R 친구와 내 세무사님뿐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건, 작사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시도에 대해 겁을 덜 먹게 됐다. 친구와 스토리를 짜고 콘셉트를 만들면서 지난해에는 방탈출카페도 오픈해봤고, 영상 작업도 해보고 있다. 

그럼 작사가로서 가장 뿌듯할 때는 언제일까.
전간디
: 나는 인터넷도 잘 하지 않고, 가사에 대한 반응을 찾아보거나 하는 편도 아니라서 특별히 보람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사가’라는 호칭 자체가 아직 너무 낯설기도 하고. 참, 이런 재미는 있다. 가끔 사촌동생들을 만나면 내가 쓴 줄 모르고 이 노래의 가사가 얼마나 좋은지, 여기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등등 나한테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물론 비교는 안 되겠지만 (웃음) 그럴 때 종종 ‘아, 슈퍼히어로들이 이런 기분일까?’ 싶다.

다른 이들의 가사를 보면서 여전히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하나.
전간디
: 어릴 때부터 셔먼 형제(Sherman Brothers)가 만든 디즈니 만화의 음악들을 너무 좋아했는데, 요즘도 들을 때마다 감탄한다. 가사의 내용이나 라임도 좋고, 스토리의 한 흐름을 정확하게 담당하는 동시에 음악적으로 가져가야 할 것들은 또 완벽하게 가져간다. 그리고 아이돌 노래 중에서는 심은지 님, 김진환 님, 그리고 켄지 님의 작품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켄지 님이 쓰신 소녀시대의 ‘여자친구’라는 곡은 내 기준에서 아이돌 가사의 정석이다. “바보가 돼요 밥을 흘려요”라는 부분에서 뒤통수를 탁 맞은 기분이었다. 그 외에도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는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쓰고 있던 가사가 너무 부끄러워서 작업을 멈췄을 정도였고, 최근에는 세븐틴의 가사에 계속 눈이 간다. 그 나이대만 쓸 수 있는, 내 머리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표현과 에너지가 너무 신선하고 부럽다.

본인은 어떤 작사가로 기억되고 싶을까.
전간디
: 기억에 남지 않는 작사가이고 싶다. 그래서 예명도 계속 바꾸는 거고. 그냥, 살아가면서 어떤 순간과 감정을 마주했을 때 ‘아,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었지’라고 사람들이 한 줄 떠올려줄 수 있는, 그런 가사를 쓰는 작사가가 되고 싶다.

앞으로는 결과물도 더 자주 만나볼 수 있을까?
전간디
: 사실 전문적으로 작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 앞서 말했듯 의뢰 자체도 많지 않고, 내가 느끼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가사가 나오면 의뢰가 오는 만큼 결과물도 드리지 못하고 있다. 항상 ‘나는 작사에 재능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매 작품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가사를 쓴다. 하지만 앞으로 능력만 된다면 더 많은 작업물을 남겨보고 싶긴 하다. 그렇게 되면 아마 사촌동생들과 할 얘기도 좀 더 많아지겠지. (웃음)

 

 

엑소 썬더랑 에프엑스 첫사랑니, 러블리즈 데스티니 다 가사 짜임새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다 전간디 작사가님 작업물이네.

이분의 감성과 글발이 부럽다 ㅠㅠㅠㅠㅠ 근데 인터뷰 내용은 파워 겸손.. 존경스럽다 진짜. 가사 많이 써주세요!!!! 과학 원리 녹아든 가사 넘 좋음!!!

서지음 작사가님 인터뷰는 아래에

 

2016년의 작사가│① 서지음 “내 안의 ‘중2’를 철들지 않게 할 거다”2016.05.25

 

최근 아이돌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EXO의 ‘으르렁’과 러블리즈의 ‘Ah-Choo’·레드벨벳의 ‘Dumb Dumb’ 등을 작사한 서지음은 팀의 이미지를 한눈에 그려내는 가사를 쓴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가사를 빚어낼 수 있는지, 그에게 하나하나 물었다. 서지음 작사가의 대답은 좋은 가사를 쓰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자 성실한 직업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최근 러블리즈와 오마이걸, Mnet [프로듀스 101] 등 작사한 결과물들이 한꺼번에 나왔더라.
서지음
: 실제 작업한 기간으로 따지자면 예전에 한 것과 근래 한 것 들이 반반 정도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돼서 결과물이 더 많아 보이는 것 같다. 요즘에도 작업은 계속 하는 중인데, 엄청난 양이라 곧 재충전 겸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다. 가사를 쓰다 보면 한 번씩 머릿속이먹구름 낀 것처럼 흐릴 때가 있거든. 여행을 다녀오면 개운해지는 느낌이라 새로 작업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프로듀스 101]에서는 ‘Yum-Yum’과 ‘Fingertips’·‘Crush’까지 세 곡의 작사를 맡았는데, 팀의 색깔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 더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서지음
: 아무래도 신인보다는 캐릭터가 있는 팀이 편한데, [프로듀스 101]의 경우에는 멤버들의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 같아서 아예 투명한 상태로 시작했다. 일단 작곡가분이 요구하는 내용을 많이 참고하기도 했고, 곡을 최대한 많이 들으면서 캐릭터를 읽어내려고 한 거다. 가이드를 들어보니 ‘Yum-Yum’은 톡톡 튀고 발랄한 분위기, ‘Fingertips’는 그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성숙한 느낌이더라. ‘Crush’는 ‘덕통사고(교통사고처럼 우연하고 갑작스럽게 어떤 분야의 팬이나 마니아가 되는 것)’라는 콘셉트를 잡고 만들어간 곡이고.

가사를 쓸 때 따로 레퍼런스를 찾진 않는 건가.
서지음
: 90% 정도는 상상력에 의존한다. 가끔씩 어디선가 받은 영감을 메모로 써두기도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노래에 이걸 꼭 넣어야겠어’ 하는 의식을 갖고 있으면 끼워 맞춘 느낌이 나거든.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 그러니까 친구한테서 이야기를 듣거나 영화를 통해서 본 것 등이 작업에 몰입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특히 나는 어릴 때부터 책과 같이 자라온 편이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작사에도 은근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SF나 추리소설·판타지 등 내가 실제로 겪기 힘든 이야기들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판타지 계열의 노래를 만나면 물 만난 고기가 된다. (웃음) EXO의 ‘나비소녀’나 ‘월광’·‘Black Pearl’, 오마이걸의 ‘CLOSER’·‘LIAR LIAR’ 같은 것들 말이다.

기획사 쪽에서 그런 분위기를 주문할 때도 있나.
서지음
: 보통 열에 여덟, 아홉은 가이드라인을 아주 디테일하게 주지 않는다. 그냥 자유롭게 써달라고 한다. 그래서 노래를 들어보고 어느 정도는 판타지스러운 가사를 넣어도 되겠다, 잘 어울리겠다 싶으면 넣는 편이다. 

그럴 경우 팀이 그동안 유지해온 캐릭터와 어긋나지는 않을까? 
서지음
: 아무래도 캐릭터나 스토리텔링은 앨범마다 조금씩 달라지지 않나. 해당 가수에 대한 정보를 잘 모를 때는 전작을 참고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들어온 가이드곡이다. 이 노래를 회사에서 골랐다는 건, 이 안에 있는 느낌이나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라고 생각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을 듣고 느껴지는 부분을 잘 살려내면 된다고 본다. 하나의 곡으로 회사와 작곡가와 내가 소통을 하는 거지. 가이드라인을 크게 주지 않아도 ‘이번 콘셉트는 약간 이런 느낌으로 가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감이 온다. 

그래도 f(x)의 ‘Electric Shock’는 처음부터 ‘4행시를 넣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들었다.
서지음
: 가이드를 들었을 때 그 요청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전 전 전류들이”라는 부분의 박자가 ‘딴 딴 따다다단’이라 운을 짚는 것 같았고, 그게 사행시랑 비슷하게 들렸다. 전혀 이질감이 없어서 사행시를 쓰는 게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려운 작업이라, 지금 말하려면 굉장히 창피한 단어들을 이것저것 많이 넣어보기도 했다. (웃음) 결국 다 탈락하고 “전기충격”이 살아남았다.

 

작사한 곡들 중 ‘Electric Shock’의 “전기충격”처럼 핵심 단어에서 이미 그룹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보이는 것들이 많더라. 예를 들어 EXO의 ‘으르렁’이나 러블리즈의 ‘Ah-Choo’·레드벨벳의 ‘Dumb Dumb’ 같은 곡들. 

서지음: 일단 ‘Dumb Dumb’은 가이드 버전에서부터 ‘Dumb Dumb’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그 자리에 다른 후보들을 올려봤는데 그만한 게 없어서 다 탈락됐고, ‘Dumb Dumb’을 살려서 쓰다 보니 나머지 구절의 가사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사실 작사를 할 때, 뭔가 사람들 머리에 남을 만한 문구를 넣기 위해 많이 의식한다. 꽂히는 후렴구를 만들 때는 개그맨들이 유행어를 만드는 식의 접근을 하는 거다. 사람들이 이걸 많이 흥얼거릴 것인가? 많이 기억하고 부를 것인가? ‘으르렁’도 그런 과정으로 만들어진 가사다. 반복되는 후렴구에 어울릴 만한 글자를 몇백 개씩 뽑아놓고 어떤 게 가장 임팩트 있는지, 어떤 게 가장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지 혼자만의 경쟁을 열어보는 거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보기도 하나.
서지음
: 초반에는 그럴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직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점점 제3자의 눈으로 내가 쓴 가사를 바라보는 노하우가 생겼달까. 하지만 곡이 공개된 후에 리스너들의 반응은 여전히 찾아본다. 

그중 기억에 남는 건 뭔가.
서지음
: 문장이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칭찬을 많이들 해주셔서 조금씩 힘이 더 났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X맛’이라거나 ‘중2병’처럼 안 좋은 반응들도 많다. ‘Electric Shock’와 ‘으르렁’을 썼을 때 특히 그랬지. 동생한테 이런 댓글들을 보여주면서 “야, 이 사람들이 나보고 ‘X맛’이래” 이랬더니 동생이 가만히 있다가 “음, 좀 그런 것 같긴 해”라고 하더라. (웃음) 그리고, 봤던 반응 중에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한글 파괴다, 문법 파괴다, 이런 것들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변명해보자면 나는 한글을 사랑하고, 최대한 문법을 파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앞으로도 문법을 지키면서 예쁜 표현들을 많이 찾아볼 거다.

해외 팬들이 많은 K-POP의 특성상 외국어 가사의 중요성도 높지 않을까 싶었다.
서지음
: 그 때문에라도 나는 한글을 많이 넣고 싶어 하는 타입이다. 만약 영어와 한글이 비슷한 임팩트에 비슷한 느낌이라면, 한글을 선택한다. 한글이 들어갔을 때 어색해지는 구절이 있다든지, 의뢰하는 쪽에서 ‘이쪽에는 영어를 살려주세요’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으르렁’의 중국어 버전도 다른 부분과 달리 후렴구만은 ‘으르렁’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대체할 단어가 없다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 한글도 널리 알려질 수 있구나, 싶어서 오히려 기뻤다.

원래 전공이 언어 관련인가.
서지음
: 아니다. 음악도 언어도 문학도 아니다. 그냥 다 좋아한 것뿐이다. 이걸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작사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나는 음악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니까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작사 학원에 1년 정도 다니다가 기회가 닿아서 하동균 씨가 부른 SBS [부탁해요 캡틴] OST ‘가슴 한쪽’으로 데뷔한 거다. 

데뷔가 굉장히 빨랐다.
서지음
: 그렇다. 데뷔도 빨랐고,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티서 ‘Twinkle’처럼 유명한 가수의 타이틀을 쓴 것도 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이돌 가사를 쓴 건 ‘Twinkle’이 처음이었는데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나는 걸 보면서 너무 떨리고 꿈같더라. 가족들도 밖에서 노래가 들릴 때마다 “누나, 나 지금 세차장 지나가는데 누나 노래 나와”, “나 어떤 가게 앞 지나가는데 딸 노래 나와” 하고 전화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이런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그렇게 빠를 수가 없다. (웃음) 이제는 적응이 돼서 내가 쓴 가사가 나와도 신기하지는 않고 ‘아, 기쁘다. 감사하다’ 정도의 감상이 든다.

막연하게 꿈꿀 때와 직접 일을 하는 건 또 다르니까.
서지음
: 최근까지도 고민한 게 이거다. 예전에는 이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겠다는 각오로 덤볐다면, 지금은 ‘아… 또 일이네’ 이렇게 된 거다. 나도 모르게 일을 미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 회의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냥 인정을 하고 나서 편해졌다. 아무리 좋아했던 거라도 이제는 내 일이니까 가끔은 재밌지 않을 수 있고, 그게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는 거다. 그러고 나니 압박감도 줄어서 지금은 이전보다 좀 더 무거운 생각 없이 작업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옛날에는 음악도 즐거움을 위해서 들었다면, 지금은 저절로 일 생각을 하게 된다. 팝송을 들으면서 한국어 가사를 붙인다면 어떻게 쓸지 궁리한다든가.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게 내 일이고, 그렇게 돼버렸는걸. (웃음) 

작사가 지망생들까지 가르치게 됐는데, 무엇이 가장 기본이라고 이야기하나.
서지음
: 일단 작사가라는 의식을 버리고 곡이 만들어놓은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의 입으로 이야기해야 된다는 것. 수업을 하다 보면 작사가의 존재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가사를 많이 받는다. 내 글을 가사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튀어나오면, 그건 가사가 아니다. 내가 쓰고 싶은 것과 이 노래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거든. 노래를 잘 듣고 노래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 잘 써야겠다, 멋있게 써야겠다, 기가 막힌 문장을 만들어내야겠다, 이게 작사가의 의식인데 그러면 오히려 불필요한 수사를 하게 된다. 이런 건 보면 읽힌다. 

노래 속 화자가 된다는 건 어떤 뜻일까? 
서지음
: 예를 들어 드라마 대본이라고 치면, 작가들은 아이부터 노인까지 각기 다른 등장인물의 대사를 정말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쓰지 않나. 그거랑 똑같은 것 같다. 해보지 않아서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지만, 한 번 겪어보면 누구든 할 수 있을 거다.

앞으로도 아이돌 쪽 가사를 주로 쓰게 될 텐데, 그렇다면 본인도 십 대, 이십 대의 감성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겠다.
서지음
: 그런데 사실 지금도 나이가 꽤 많다. (웃음) 어떨 때는 내가 가사를 쓰고도 약간 오글거리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철들지 않은 ‘중2’가 내 안에 내재돼 있나 보다. 그 아이를 계속 철들지 않게 해야지.

시간이 흐르는 게 걱정되지는 않는 걸까.
서지음
: 미리 사서 걱정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작사가로 데뷔할 때부터 ‘어떤 화자든 다 될 수 있다’고 다짐했고, ‘나는 이런 부분이 좀 약해’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언젠가는 젊은 감각의 가사를 쓸 수 없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냥 나를 믿어주고 싶다. 어떤 식으로든 제한을 두지 않고 뭐든 쓸 수 있다고.

 

 

인터뷰 출처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052209027275349,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052209017266713&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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